마지막 출근일 회사 라운지에서 쓰는 글
퇴사를 앞두고...
출근 마지막 날 회사에 앉아서 감정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흥분, 불안함, 그리고 조금의 무책임함이 느껴진다.
첫 회사 퇴사를 앞두고 어떻게 해야 잘 마무리할까라고 생각해보다가 결국엔 더 잘 마무리하고, 덜 잘 마무리하는 것에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 글을 좀 써보기로 했다.
엄청난 자유를 앞두고나니 막상 오히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틀과 제한이 사람의 사고를 더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
“곧 퇴사인데 어떠세요? 시원섭섭하세요?” 라는 질문에 “아뇨. 그냥 시원합니다.” 라고 항상 답을 했다.
회사 상황에 불만은 많았지만, 이제 그것이 나와 연결되진 않는다. 나와 회사에는 깊은 해자가 생겼고, 이제는 그저 씹기 좋은 불량식품 같을 뿐이다. 씹을수록 나오는 불쾌함과 바뀌지 않는 상황만 흘러 나올 뿐이다. 나에게 부질없는 도파민과 부정적인 감정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불량식품과 매한가지다. 여기서 "섭섭"을 빼버리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시원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결국 이 이야기가 현재 가장 중요한 질문인 것 같다. 이상과 현실을 적절히 밸런싱을 해야한다. 그리고 동시에 현실에서 이상으로 가기위한 마일스톤을 만들고 실험과 검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은 몇 달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몇 년이 걸린다. 나는 거기까지 가기 위해 생활을 지속할 수 있어야하고 동시에 이상으로 가기 위해 공부하고 실험하고 도전을 계속 해야 한다.
왜 퇴사를 결심했나?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너무 재미없어졌다.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 이 회사에서 제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재미없다.
- 이 회사에서 만든 제품으로 보람을 느낄 수 없다.
- 이 회사에서 기여한 만큼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이러한 이유로 회사에 나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나의 자아가 갉아먹히는 느낌이 들었다. 관성의 쳇바퀴와 현실적인 문제의 핑계에 깔려 퇴사를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구체적인 것도 정해진 게 없었지만 계속 여기에 갇혀있다보면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져 사람이 어떻게 돼버리거나 이후에 에너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이 결정에 한몫했다.
더이상 팀으로 일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제품의 방향을 결정하는쪽과 만드는쪽에 사일로가 생겼고 두 영역을 브릿징하는 장치, 사람이 없다고 느껴진다. 제품팀은 제품으로부터 소외된 느낌을 받는다. 그저 단순히 정해진 것 내에서 만드는 사람들일뿐이다.
제품을 쓰는 사용자들로부터 제대로된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 제품팀과 고객사이에 엄청난 장벽이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지하 벙커 안에서 주어진 지시사항을 전달받아 제품을 만들고 만든 것을 올려보낸다. 지상에선 그것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제대로 쓰는 사람들은 있는지, 쓰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지 알 방법이 없다. 제품팀에서 만든 기능이나 개선사항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알기가 힘들다.
이렇게 임팩트를 알기 어렵다보니 내가 얼마나 이 제품과 회사에 기여를 했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앞으로 뭘 할 건가?
게임을 계속 만들고 싶지만 만드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개인 메모장에 있던 글을 조금 더 다듬어서 올리게 되었다. 누군가가 이 블로그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다. 어떤 컨텐츠 창작자라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다음 글이 언제 올라오냐고 얘기해주신 분들에게 작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글의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마지막 섹션은 쓰다가 말았다. 그런데 이 글은 현재 시점으로부터 한 달 전쯤 쓴 글이고 지금은 또 많은 생각들이 생기고 바뀌었다. 현재 시점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 다시 써보면 좋겠다.